본문

국가유산사랑

제목
맛과 멋, 영양까지 살린 궁중김치
작성일
2014-12-05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5919

맛과 멋, 영양까지 살린 궁중김치
우리 한국인이 먹어왔던 김치, 그 김치를 담그던 집안의 행사 즉 김장문화(Kimjang, making and sharing kimchi)가 

2013년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됐다. 농사를 주업으로 하는 우리나라 전역에서 누구나 담가먹으

며 저절로 이어내려 온 김치가 한국의 상징적인 음식이자 세계적인 음식이 된 것이다. 밭에서 손쉽게 얻어지는 계절 

채소들로 만든 김치는 밥만으로 부족한 영양소를 보충하는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 반찬이었다. 특히 겨울이 시작되

는 동지(冬至) 무렵, 겨우살이 양식을 준비하는 가정마다의 김장행사는 한국인의 식생활 풍속에서 아주 중요한 문화

가 됐다.

 

계절에 따른 채소 대부분이 김치의 주재료

김치하면 요즘은 거의 통배추김치를 연상하지만, 사실 김치는 계절에 나오는 대부분 채소를 가지고 소금으로 절 인 후 파, 마늘, 생강 등 향신채와 젓갈, 고춧가루를 넣고 버무려 만든다. 다른 음식처럼 금방 만들어 먹는 게 아니 고 며칠 내지는 몇 달까지도 두고 먹는 저장음식이었다.

한반도인 우리나라는 지역마다 김치의 종류가 매우 많고 김치의 간이나 맛 또한 다르다. 그 중 중부지방에 속하 는 궁중김치는 젓갈이 많이 들어간 짠 남부지역의 김치, 또는 담백하고 국물이 많은 북부지역의 김치와 비교하면 짜 지도 싱겁지도 않으며, 김칫국물도 적거나 많지 않게 붓는다. 김치소는 무와 갖은 양념을 다 넣지만 고추를 많이 쓰 지 않아 김치색이 옅은 붉은빛을 띠고, 젓갈은 짙은 맛의 멸치젓이나 갈치젓을 쓰기보단 서해 쪽에서 오는 새우젓과 조기젓을 많이 쓴다.

왕실의 대한 공상과 제사와 연향에 필요한 채소 공급은 침장고(沈藏庫)라는 기관을 두어 관리했다. 조선 태조 때 처음 생겼는데 각색채소를 재배하고 소를 키우는 일은 담당했는데, 1466년(세조 12)에 사포서(司圃署)로 고치고 김 장채소를 담당했다.

궁중 일상식을 나타낸 유일한 의궤인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 1795)』에서 보면 윤 2월 9일부터 16일 사이 올라간 김치류는 크게 침채(沈菜)와 담침채(淡沈菜)로 표기하고 침채는 수근(水芹, 미나리), 교침채(交沈 菜, 섞박지), 청근침채(菁根-, 무김치), 청과(靑瓜), 백채(白寀)이며, 담침채는 백채, 청근, 수근, 치저(雉菹, 꿩김 치), 산개(산갓), 해저(醢菹, 젓국지), 석화잡저(石花雜菹, 굴송송이)가 수라상에 올라갔다. 이 당시 김치재료는 미나리, 무, 배추, 산갓, 오이 등이었다.

구한말 시기의 12첩 수랏상에 올린 궁중김치는 깍두기인 송송이, 싱겁게 담근 국물김치인 담침채, 무와 배추에 작게 썰어 해물 조기젓을 넣어 섞어 담은 교침채 세 가지이며, 마지막 상궁이 전수해주었다.

 

궁중 배동치미

 

미리 먹을 시기에 따라 나누어 담은 궁중김치

궁중잔치인 진찬(進饌), 진연(進宴)에서도 김치는 상차림에 올라갔다. 1848년과 1877년의 잔치에는 김치 종류 중 숭침채(菘沈菜)가 있었고 1887년, 1892년, 1901년, 1902년 잔치에는 쓰인 청근침채(菁根沈菜)에는 무·파·고추·소금이 들어갔다. 또 1901년 잔치에 오른 장침채(醬沈菜, 장김치)에는 배추·무·파·오이·고추·마늘·생강·간장·소금·잣&m iddot;꿀·고춧가루 등의 재료가 들어갔다.

1924년 11월 조선일보에 게재된 궁중김치 소개를 보면 구한말 궁중김치의 분량과 종류를 짐작할 수 있다.

“벌써 여기저기서 배추의 견본을 드려다 놓고 고르기 시작한다. (중략) 배추 약 1만 통, 무 약 2,500관 중에서 덕수궁 애기씨 것과 광화당 마님, 그 외에 종친 세 분과 배추 약 5백 통, 무 약 2백 관 가량을 연례로 하사하시고 그 나머지로 궁내의 김장을 하게 된다. 궁내의 평년 김장은 지름김치로 섞박지 7 ,깍두기 4, 보쌈김치 2, 동치미 5, 장김치 2로 합하여 17항아리를 하고, 겨울김치로 통김치 48, 깍두기 15, 섞박지 42, 무깍두기 2, 동치미 18, 보찜김 치 2, 무김치 22, 원앙김치 1, 짠김치 4, 만두김치 2 합하여 156독 가량을 하게 된다.”

미리 먹을 지레김치와 본김치를 나누어 하니 지레김치는 싱겁게 하고 젓갈이나 해물이 많이 들어간 김치로 볼 수 있다. 본김치는 조금 짜게 하여 설날이 지나서 먹게 되는 것이다. 김치 종류 중 만두를 해먹기 위해 만두용 김치를 담그는 것도 특별하다. 원앙김치는 알려지지 않은 김치인데, 무 같은 것을 두 개를 짝 맞추어 담근 김치가 아닐까 짐작된다.

또한 궁중김치로 단연 장김치만한 것이 없다며 소개했다. 장김치는 맛을 내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장맛이며, 궁 중에서는 10년 이상 묵힌 장을 이용하기에 그 맛이 조청과 같이 달고 그 맛이 일품이라 했고, 폐하(순종)께서 즐겨 하신다는 기록도 있다.

 

모든 궁녀들이 동원된 궁중김치 담그기

1900년대 초 서울의 김장용 배추는 방아다리(충신동), 느리골(효제동), 훈련원(병사훈련장) 것이 제일이라 했고, 궁중에서 쓰는 배추는 마장동·왕십리·연건동에 채마전을 지정해 놓고 좋은 것만을 골라 진상토록 했 다. 이곳은 토질도 좋고 배추의 품종이나 재배법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배추보다 속이 들고 색깔이 희고 힘줄이 적 으며 감칠맛이 있었다고 한다.

궁의 김장은 입동(立冬) 3~4일 전후에 시작했으며, 궁 안에 기거하는 사람들까지도 모두 먹어야 하니 많은 양의 김치를 담그는 일이 보통이 아니었다. 다듬는데 하루, 절이는데 하루씩 걸 려 완전히 끝내려면 열흘이 걸렸다하며, 이때는 소주방 궁녀들만 할 수가 없어 침방이나 수방궁녀들까지 모두 동원 되어야만 했다. 가장 많이 담그는 궁중 배추김치는 젓국지로 통배추, 무채에 배·갓·미나리·대 파·마늘·생강 양념과 낙지·청각·굴 등 해물이 많이 들어갔다. 젓갈은 새우젓을 쓰고 조기젓은 살은 저며 넣고 나머지는 맑게 젓국을 달여서 썼다. 국물은 넉넉히 넣는데 양지머리를 끓인 육수와 조기 맑은 젓국을 더해 부었다. 고추는 많이 넣지 않아 지나치게 빨갛거나 맵게 하지 않았고, 무는 큼직하게 썰어 배추김 치와 함께 넣어 익혔다.

동치미는 배를 많이 넣어 아주 달고 시원하게 담갔는데, 불면에 시달리던 고종은 배동치미를 국물로 한 냉면을 밤참으로 즐기셨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글 한복려(중요무형문화재 조선왕조궁중음식 기능 보유자) 사진 궁중음식연구원

만족도조사
유용한 정보가 되셨나요?
만족도조사선택 확인
메뉴담당자 : 대변인실
페이지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