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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흙과 불로 탄생한 새로운 책가도 (冊架圖)
작성일
2022-07-28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806

흙과 불로 탄생한 새로운 책가도 (冊架圖) 책과 귀중품이 가지런히 쌓여 있는 모습에서 학문을 향한 열의와 문인(文人)의 소양이 전해진다. 조선 후기 왕에서 서민까지 전 계층의 사람들이 향유했던 그림, 책가도(冊架圖)는 책을 사랑하는 우리 문화를 대변한다. 나는 선비들의 마음과 생활상을 담은 책가도에 현재를 사는 여성으로서 내가 고른 책과 애정 어린 사물을 함께 표현하고 싶었다. 01.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이택균필 <책가도 병풍>(李宅均筆 <冊架圖 屛風>) ©서울공예박물관

현대적 책 읽기 경험과 만난 책가도

조선시대 정조가 사랑한 그림으로도 알려진 책가도는 글 읽기를 좋아하고 학문의 길을 추구하던 선비의 사랑방이나 서재에 두어 책을 아끼고 늘 가까이 두겠다는 마음을 반영했다. 책가도는 그림에 담긴 상징성 외에 그 자체만의 아름다움과 화면 구성을 뜯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화면을 가득 채우는 사물 들은 3차원이나 투시도법처럼 보는 사람 중심의 시점과는 상관 없이 매우 다양한 시각으로, 스스로의 존재감을 드러내어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다. 벼루, 필통, 붓 같은 선비 정신을 상징 하는 문방구류, 행운과 배움을 상징하는 두루마리 또는 향로, 술병, 꽃병처럼 책과 전혀 관계없는 다양한 생활용품을 그려 넣기도 했고, 수복(壽福)이나 다자(多子)를 상징하는 과일을 그린 작품도 찾아볼 수 있다.


나는 과거 선비정신을 담아내고 남성의 취향으로 향유된 책가도를 현재를 사는 여성의 시선과 내 모습으로 나타내고 싶었다. 바로 시작할 수 있는 작업은 아니었다. 단순히 나의 취향을 표현하는 것을 넘어 수많은 사물 중 그 사물을 작품에 넣은 합당한 이유가 필요했다. 그 옛날 책이 선비정신으로 여겨졌던 것처럼 작품을 보는 사람들이 작품 속에 담긴 책을 통해 지혜로움에 다다를 수 있길 바랐다. 수많은 사물이 한 작품을 구성하는 책가도처럼 흙과 불을 기본으로 다채로운 재료를 변주해 나만의 책가도를 만들고 싶었다.


02.〈부귀영화-불멸〉, 테라코타 위에 아크릴 채색, 111x85x6cm, 2015

그 무엇도 흔들 수 없는 흙의 단호함

내가 사용하는 테라코타 기법은 청자토나 분청토 같은 흙을 매개로 거대한 도판(陶板)을 만들고 그 위에 또다시 흙을 덧붙이거나 파내어 입체감 있는 부조 형식으로 기본 형태를 만들어 나간다. 완성된 작품이 휨 없이 똑바른 선과 형태를 보이는 것은 휜 부분을 갈고 다듬고 메우고 다시 갈아내는, 시간의 흐름도 잊어버릴 만큼 고단한 작업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형태가 만들어지면 건조한 다음, 가마에 들어갈 만큼의 크기로 분할한 뒤 구워낸다.


처음부터 상처는 없었다는 듯 올곧은 형태가 완성되면 비로소 채색 작업을 하게 된다. 구운 조각을 합판 위에 재구성해 붙이고 이후 그 표면에 아크릴 물감을 여러 번 겹쳐 채색한다. 이 과정을 통틀어 ‘테라코타 릴리프 (Terracotta Relief)’라고 부른다. 구워진 흙이 바탕이니 세필로 선을 몇 개 긋고 나면 붓이 무뎌져버린다. 아크릴 물감은 물을 많이 섞어 여러 번 색을 올려야 하는데 물감의 반은 테라코타의 기공으로 스며든다. 그 덕분에 테라 코타가 지닌 질감과 형태를 유지하며 다양한 색으로 표현할 수 있다.


이 같은 작업은 흙에 더해진 강렬한 색채를 통해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물론 형태를 만들 때도, 불에 들어가서도 휘고 갈라져버리는 까다로운 성질은 아무리 숙달된 손으로 다루어도 생각했던 결과물을 쉽게 내어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내가 흙을 사랑하는 이유는 땅의 ‘영원한 고향’이자 생명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작업하는 과정에서는 크기도 형태도 즉흥적인 감정으로 자유롭게 다룰 수 있지만, 불이 더해진 완성품은 그 무엇도 흔들 수 없을 것 같은 단호함이 느껴진다.


재료가 주는 무게감과 견고함은 작업 바탕에 깔린 고된 노동의 시간을 충분히 보상해 준다. 온몸이 삐거덕거리며 아우성을 쳐도 아침이면 다시 몸을 일으켜 세워 작업대 앞에 선다. 하고 싶은 작업도, 큰 공간을 사용하고 싶은 욕심도 깊어진다. 과거의 유산인 책가도로 살아 숨 쉬는 현재를 만드는 작업을 앞으로도 이어가고 싶다.


이지숙 도예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과 동 대학원에서 도예를 전공한 이지숙 작가는 20년 넘게 도예 작업에 매진해 왔다. 도예 특유의 넉넉함과 따뜻함을 사랑하는 그는 서른 살 무렵, 불확실한 미래를 고민하며 책을 읽기 시작했고, 독서 모임에 나갔다. 그때의 경험은 책가도 재해석 작품으로 대표되는 지금의 그를 만들어 주었다.




글, 사진. 이지숙(도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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