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트위터 페이스북
제목
책의 보급과 유통에 발 벗고 나섰던, 책쾌
작성일
2023-09-26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811

책의 보급과 유통에 발 벗고 나섰던, 책쾌 ‘책의 나라’, ‘선비의 나라’였던 조선이지만 서점이 귀하여 책 한 권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럴 때 고객을 찾아다니며 책을 팔던 직업이 있었으니 바로 책쾌이다.

책 구하기 쉽지 않았던 시대, 지식의 확산에 기여

조선시대 서점은 관영 서점과 민영 서점이 있었다. 관영 서점은 나라에서 책을 간행하여 팔던 곳인데, 교서관이 그 역할을 했다. 교서관은 출판을 맡은 관청으로, 경서, 문집 등을 펴내어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민영 서점은 민간인이 영리를 목적으로 출간한 책을 팔던 곳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민영 서점이 언제 처음 생겨났는지 정확히 밝혀진 것이 없다. 다만 16세기 후반쯤 민간인이 영리를 목적으로 간행한 책인 방각본이 나온 뒤부터 상업 출판과 민영 서점이 출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민영 서점이 흔치 않아 책이 필요한 사람들은 서적 중개상에게 주문하여 책을 샀다. 서적 중개상은 날마다 서당, 양반집, 관청, 저잣거리 등을 다니며 책을 팔았다. 이들 책 거간꾼을 ‘책쾌(冊儈)’, ‘서쾌(書儈)’라고 불렀다. 18세기 말에 한양에서 부동산 거간꾼을 ‘가쾌(家儈)’라고 부르듯이 중국풍의 이름이었다.


책쾌는 책을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 사이의 거래 중개와 책을 싼값에 사서 이윤을 붙여 파는 일을 했다. 집집마다 다니며 단골을 확보했는데, 고객이 필요한 책은 무엇이든 구해다 주었다. 따라서 책쾌는 희귀본이나 금서라도 구할 수 있는 정보력과 최소한의 문자 해독 능력, 책에 관한 내용을 파악하는 식견을 갖추어야 했다. 책쾌는 15세기쯤에 처음 등장했는데, 조선 후기 문예 부흥기인 영조와 정조 때 한양에는 수백 명의 책쾌가 영업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책장수는 조생이었다. 그는 ‘조신선’이라 불릴 만큼 특이한 용모와 기이한 행적으로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실학자 정약용은 그에 대한 인상을 이렇게 기록했다. ‘조신선이란 자는 책장수로, 붉은 수염에 우스갯소리를 잘한다. 눈에는 번쩍번쩍 신광(神光)이 있었다.’ 사람들은 조생이 어디 출신이고 어디 사는지 몰랐다. 그가 밥을 먹는 모습을 아무도 본 적이 없으며, 저녁에는 술에 잔뜩 취하여 어디론가 사라졌다. 조생은 날이 밝으면 저잣거리로, 서당으로, 양반집으로 나는 듯이 달려가 책을 팔았다. 옷소매에 책을 잔뜩 넣어가지고 다녔는데, 책을 모두 꺼내면 방 안에 수북이 쌓였다. 조생은 이런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세상에 있는 책이 모두 내 책이지요. 이 세상에서 책을 아는 사람은 오직 나밖에 없어요.”


조선 후기 장서가들은 책쾌를 통해 책을 구입했는데, 순조 때 우의정을 지낸 심상규는 4만 권, 헌종 때 이조판서, 공조판서를 지낸 조병구는 3만 권이 넘는 장서를 지녔다. 19세기의 실학자인 최한기는 중국이나 서양에서 수입해 온 책들을 책쾌에게 구해 읽었다. 다 읽은 책들은 책쾌에게 되팔아 다른 책을 입수했는데, 책쾌가 하도 드나들어 그의 집은 문턱이 다 닳아 없어질 정도였다. 책쾌는 일제 강점기를 지나 해방 후 서점들이 생겨나면서 점차 사라져 갔다.


20세기 전반기까지는 송신용, 한상윤, 이성의 등의 책쾌가 일반인이 구하기 힘든 고서나 고문헌 자료를 학자나 전문 식자층에 공급하는 활동을 하여 명맥을 유지했다. 책쾌는 책을 쉽게 구할 수 없었던 시대에 서점의 역할을 대신하여 책의 보급과 유통에 발 벗고 나섰던 전문직이었다. 이들이 활발한 활동을 함으로써 조선 후기 지식의 확산과 전파에 크게 기여할 수 있었다.


00.『미암일기』16세기 학자인 유희춘이 11년간 쓴 일기인 『미암일기』를 보면 책쾌의 존재와 영업 방식을 알 수 있다. 1567년 10월 18일자에는 “들으니 한양 의금부 북쪽에 ‘박의석’이란 책쾌가 있는데, 모든 곳의 서책을 반값에 사서 제값을 받고 판다고 한다”라고 했고, 1568년 1월 24일자에는 “박의석의 아들 온정이 『궐리지』를 팔려고 한다기에 그를 초청했다”라고 했다. ©문화재청


글. 신현배(역사 칼럼니스트, 아동문학가) 일러스트. 박수영




만족도조사
유용한 정보가 되셨나요?
만족도조사선택 확인
메뉴담당자 : 대변인실
페이지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