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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강 유역 최대의 신석기시대 집단 취락지
작성일
2023-06-29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371

한강 유역 최대의 신석기시대 집단 취락지 서울 암사동 유적 서울 암사동 유적은 6000년 전쯤의  신석기시대 사람들이 살았던 집터 유적이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신석기시대 집단취락지로는 가장 규모가 크다. 이 유적은 동남쪽 구릉에서 발견된 청동기시대 무문토기 유적과 인접해 있어서 두 시대의 문화가 접촉하는 양상을 보여준다. 또한 농경문화가 시작됐음을 입증하는 고고학적 자료도 발견된, 귀중한 유적이기도 하다. 01.한강변에 자리한 서울 암사동 유적 전경. 바로 앞쪽의 구리암사대교 건너에 아차산성이 있다.

대홍수로 드러난 한강 유역 최대의 신석기 유적

일제강점기인 1925년에 이른바 ‘을축년 대홍수’가 발생했다. 그해 여름에 무려 네 차례의 대홍수가 한반도를 휩쓸었다. 특히 7월 16일에는 타이완 해역에서 발생한 태풍이 한반도에 상륙해 엄청난 폭우를 퍼붓기도 했다. 을축년 2차 홍수를 유발한 이 폭우로 인해 한강이 범람하면서 서울의 양쪽 한강변이 물바다로 변했다. 심지어 숭례문 앞까지도 강물이 들이찼다고 한다. 한강 유역에서 발생한 사상 최대 규모의 물난리였던 을축년 대홍수가 부정적인 결과만 가져온 것은 아니었다.


당시 한강변의 모래언덕이 홍수로 심하게 패어 수많은 빗살무늬토기 조각들이 노출되었다. 오랫동안 땅속에 묻혀 있던 암사동 선사유적지가 세상에 드러난 것이다. 당시 경성제국 대학의 요코야마, 후지다가 이 일대를 간이조사했다. 하지만 조사작업은 다량의 토기와 석기를 채집하는 일에만 그쳤고, 유적은 홍수에 의해 모두 파괴된 것으로 판단해 구체적인 발굴조사를 진행하지는 않았다. 이후에도 암사동 일대 한강 근처에서는 빗살무늬토기 조각과 석기 등이 꾸준히 발견되었다.


02.유구보호각 주변에 빙 둘러서서 여러 시대에 걸쳐 만들어진 집터를 살펴보는 학생들 03.한강 유역에서 고기잡이하는 신석기시대 사람들의 재현 광경

암사동 선사유적지의 첫 발굴조사는 발견된 지 무려 40여 년이나 지난 1967년에야 시작되었다. 장충중·고등학교의 야구장을 만들기 위해 암사동 일대에서 정지 작업을 하던 중에 빗살무늬토기 조각과 돌무지가 발견됨에 따라 경희대학교 팀이 첫 발굴조사를 진행하였다. 이듬해에는 한국고고학협회가 주관한 연합 발굴조사와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의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이 당시의 발굴조사는 보고서가 발간되지 않아 발굴조사의 내용과 성과 등이 제대로 정리되지 못했다. 그래도 야구장과 주택 건설로 인해 훼손될 위기에 처한 암사동 유적을 보존하는 기틀을 마련했다는 점은 적잖은 성과였다.


1971년부터 1975년 사이에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연차적 학술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네 차례에 걸친 발굴조사에서 신석기시대 주거지 26기를 비롯하여 빗살무늬토기, 그물추, 갈돌과 갈판 등의 각종 생활도구가 대거 출토되었다. 삼국시대의 옹관묘와 건물터 일부도 확인되었다. 이 조사를 통해 신석기시대에서 삼국시대까지 이어지는 한강 유역의 문화변천 과정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04.암사동 유적의 유구보호각 안에 있는 신석기시대의 집터. 화덕 자리와 기둥 구멍도 또렷하다.

공원처럼 편안한 휴식을 주는 역사 공간

1979년에 국가사적으로 지정된 서울 암사동 유적은 수차례의 발굴조사도 진행됐다. 발굴조사의 결과로 수혈주거지군과 그 부속시설이 확인되었고, 많은 빗살무늬토기와 여러 종류의 석기뿐만 아니라 청동기시대와 백제시대의 유물까지 출토되었다. 현재 98,354㎡(약 29,752평)에 이르는 암사동 유적 내에는 유구보호각, 복원 움집과 체험 움집, 선사유적박물관, 발굴·수렵·어로 체험장 등이 들어서 있다.


서울 암사동 유적은 잘 관리된 도심공원 같다. 소나무, 참나무, 능수버들 등이 우거진 숲에서 한가로이 휴식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번잡스럽거나 시끌벅적하지 않아서 좋다. 소풍 온 유치원생, 현장학습 나온 듯한 초·중학생, 친구들과 함께 나들이에 나선 중년 여성 등 다양한 연령대의 탐방객들이 수천 년 된 이 역사 공간을 사이좋게 공유한다.


매표소를 통과하자마자 맨 먼저 유구보호각을 둘러봤다. 둥그런 유리 보호각 안에는 신석기시대 주거지(집터) 8기와 삼국시대 주거지 5기, 그리고 땅 아래로 구멍처럼 파내려 간 수혈유구 5기가 또렷이 표시돼 있다. 집터 바닥은 둥글거나 모서리를 다듬은 네모 모양으로 길이 5~6m, 깊이 70~100㎝ 정도 된다. 집터 한가운데에는 돌을 두른 화덕 자리가 보이고, 입구는 주로 남쪽으로 나 있다. 이곳에는 암사동 유적의 형성과정을 보여주는 층위(지층별 순서)와 함께 발굴조사 당시의 현장이 그대로 재현돼 있어서 신석기시대부터 현재까지의 역사적 흔적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


05.능수버들, 소나무 등이 빼곡하게 우거진 암사동 유적 내의 복원 움집 06.암사동 유적 내의 체험마을을 가로지르는 냇가. 하천에서 어로 행위를 하는 신석기시대 사람의 다양한 모습을 재현해 놨다.

도심 속에서 즐기는 선사시대로의 시간여행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움집을 짓고 살았다. 땅바닥을 파서 평평하게 다진 뒤에 나무로 기둥을 세우고 도리를 얹고 서까래를 올린 다음, 짚이나 갈대를 엮어 지붕을 덮었다. 이렇게 완성된 집은 움, 즉 ‘움푹 파인 구덩이를 파고 지은 집’이란 뜻의 ‘움집’이라 불렸다. 움집 바닥의 한가운데에는 돌을 둥그렇거나 네모지게 둘러놓은 화덕 자리를 만들어 놨다. 여기에 불을 피워 움집 안을 따뜻하게 덥히거나 어둠을 밝히고, 물을 끓이거나 음식을 만들기도 했다. 움집은 눈비와 바람을 피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맹수의 침입까지 막아주는 아늑한 보금자리였다. 현재 서울 암사동 유적 안에는 9채의 움집이 복원돼 있지만 내부 출입은 금지돼 있다. 대신에 1.5배 규모의 체험 움집을 만들어 놓아 신석기시대 사람들의 움집 내부 생활을 엿볼 수 있게 했다.


07.암사동 유적에서 출토된 갈돌과 갈판. 곡식이나 도토리 등의 열매껍질을 벗기는 데 썼다. 08.암사동 유적에서 출토된 빗살무늬토기

서울 암사동 유적의 유래 및 발굴과정, 신석기시대 사람들의 생활상과 그들이 남긴 유물 등이 궁금하다면 암사동선사유적박물관에 꼭 들러봐야 한다. 암사동 유적의 한복판에 자리 잡은 이 박물관에 들어서면 상설전시실에 전시된 빗살무늬토기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빗살무늬토기는 한반도의 대표적인 선사시대 토기이다. 특히 암사동 유적에서 출토된 빗살무늬토기는 전 세계적으로 분포하는 빗살무늬토기 가운데 가장 완성도가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빗살무늬토기는 강변의 모래나 무른 땅에 박은 채로 고정시켜 사용했다고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빗살무늬토기는 아래쪽이 뾰족한 모양으로 만들어졌다.


암사동 유적에서는 돌로 만든 도끼와 화살촉, 그물추, 괭이, 돌낫, 보습, 그리고 갈돌과 갈판 등의 유물도 출토됐다. 화살촉이나 그물추는 사냥과 고기잡이가 일상이었음을 말해 주고, 돌낫이나 보습, 괭이 등은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그리고 돌판과 갈돌은 농사를 지어 수확한 곡식이나 자연에서 채취한 도토리 등의 껍질을 벗기는 데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선사유적박물관을 나와 몇 걸음만 동쪽으로 옮기면 선사체험마을에 들어선다. 작은 냇가 주변에는 발굴, 수렵, 어로, 불 피우기 등의 체험장과 선사체험교실이 마련돼 있다. 이곳에도 예닐곱 채의 움집과 신석기시대 사람들의 생활상을 재현한 모형 세트가 배치돼 있다. 순식간에 수천 년의 세월을 거슬러 시간여행을 떠나온 듯한 느낌이 든다. 이곳 서울 암사동 유적은 호기심이 시들해진 어른들에게도 유익한 공간이지만,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들에게는 더없이 훌륭한 현장학습장이다.


가볼 만한 곳 몽촌토성(사적)백제 전기의 토성으로 둘레가 약 2.7km에 이른다. 자연지형을 이용해 진흙으로 성벽을 쌓고 나무 울타리로 목책을 세운 흔적이 확인됐다. 적들의 접근을 막기 위해 자연 암반층을 급경사로 깎아냈는가 하면 성을 감싸듯이 자연스럽게 흐르는 성내천 물길을 해자로 활용했다. 올림픽공원 안에 있으며, 성벽을 따라 산책하기 좋다. -몽촌토성 산책로 삼전도비(사적)조선 인조 17년(1639)에 세워진 비석으로 원래 이름은 ‘대청황제공덕비(大淸皇帝功德碑)’이다.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 들어가 항거하던 인조는 결국 청나라에 패해 한강변의 삼전도에서 청 태종 앞에 머리를 조아리는 치욕적인 의례와 함께 강화협정을 맺었다. 이 비석에는 당시 청 태종의 요구에 따라 그의 공덕을 칭송하는 내용이 담겼다. -삼전도비 동구릉(사적)‘한양도성의 동쪽에 있는 9기의 왕 무덤’을 의미하는 이름이다. 태조 이성계가 세상을 뜨자 하륜에 의해 왕의 무덤 지역으로 정해졌다. 태조를 비롯해 문종, 선조, 현종, 경종, 영조, 헌종 등의 능묘가 자리 잡았다. 능역이 넓고 자연환경이 잘 보존돼 있어 산책코스를 겸한 답사여행지로 안성맞춤이다. 암사동 유적에서 약 9km 거리에 있다. -동구릉의 건원릉(태조 이성계의 능묘) 국가유산 방문하고, 선물 받으세요! 가장 한국다움이 넘치는, 신비로운 우리 국가유산을 함께 만드는 길에 동참하세요. <문화재사랑> 7월호 ‘둘러보기’ 코너에 소개된 서울 암사동 유적에 방문해 7월 16일까지 인증 사진을 보내주세요. 두 분을 선정해 선물을 드립니다. QR코드를 찍으면 이벤트 참여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인증사진을 첨부해 보내주세요.


글, 사진. 양영훈(여행작가, 여행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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