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지붕 옆면에 숨은 장식들
- 작성일
- 2018-08-01
- 작성자
- 국가유산청
- 조회수
- 4342
지네철과 현어
기와지붕 합각에서 ‘人’자 모양으로 걸린 판재가 박공널이다. 공사할 때 두 널이 위쪽에서 만나는 곳에 꺾쇠를 박는데 이것은 두 널 사이가 벌어지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꺾쇠와 같은 기능을 하는 것이 지네철이다. 그런데 일부러 보기 좋게 꾸민 것이니 기능성 에 조형미가 더해진 셈이다. 궁궐 건물 지네철 중에는 국보 제225호 창덕궁 인정전과 보물 제1759호 경복궁 사정전의 경우처럼 박공널 아래쪽으로 꼬리를 늘어뜨려 장식성을 한껏 높인 것이 적지 않다.
다른 작례들을 살펴보면, 경주 불국사의 극락전 지네철처럼 물고기 꼬리를 연상시키는 것이 있고, 국보 제49호 예산 수덕사 대웅전의 경우처럼 화려한 초화 무늬를 투각하여 장식성을 높인 것도 있다. 그런가 하면 보물 제824호 안성 청룡사 대웅전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여의두문과 초화문을 결합하여 아름답고 유려한 분위기를 연출한 것도 있다.
한편, 현어(懸魚)는 그 모양이 물고기를 닮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원래 종도리 마구리를 가리거나 박공널 결구 부분을 덮는 장치지만 장식성이 뛰어나 과거에는 신분 과시용으로 활용했다.
‘현어’는 관리의 청렴결백을 의미하는 상징어로도 쓰였다. 조선 선비 권근의 시(『양촌집』 〈시류〉 편)에, “내직에서 나와서 왕화를 펴니 청백한 절조가 현어보다 더했다(王化來宣補衮餘 凜然淸節邁懸魚).”라는 시구가 있는데, 조선시대에 현어가 청백리의 상징이었음을 알려주는 자료다.
현어는 본래 물고기 모양 장식을 말하는 것이었지만 현어와 같은 위치에 부착하거나 당초, 불로초, 석류 등을 조각 또는 투각한 장식도 현어로 부르고 있다. 목조건물의 경우 보물 제825호 익산 숭림사 보광전, 경주 불국사의 안양문과 경주 월지의 임해전에서 현어를 찾아 볼 수 있다. 모두 크기가 작고, 중국, 일본의 경우처럼 나무가 아닌 철판을 오려 만들었는데, 이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특히 숭림사 보광전 현어는 철판을 교묘히 오려 물고기 비슷한 형상을 만들어낸 것이 흥미롭다. 덕수궁의 관물헌 현어는 운두문(雲頭紋)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합각벽 장식문양
현어와 지네철은 기능성과 장식성의 두 성격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합각벽의 문양들은 장식성만 있을 뿐 기능성은 없다. 궁궐과 황제릉의 침전, 사찰 불전 합각벽에서 장식문양을 많이 볼 수 있다. 궁궐의 경우 예컨대 보물 제815호 창덕궁 희정당 합각 벽의 문양은 ‘희(囍)’자 등 길상문자를 주 문양으로 하고 만상이 원만 유전하는 상태와 길상 만덕을 나타내는 만자금문(卍字錦紋)으로 여백을 채우거나 ‘수(壽)’, ‘귀(貴)’자를 전돌로 새겨 넣는 수법을 사용했다. 보물 제816호 창덕궁 대조전의 경우는 ‘락(樂)’자를 주문양으로 하고 역시 만자금문으로 여백을 채웠다. 모두 건강과 안락, 길상을 기원하는 뜻을 담고 있다.
보물 제809호 경복궁 자경전의 경우는, 꽃과 회문(回紋)으로 짜여진 팔각형 문양을 중앙에 배치하고 그 위쪽에 구름문양을 새겼으며, 여백은 만자금문으로 채웠다. 회문은 그 모양이 한자 ‘회(回)’와 닮았다는데서 유래한 이름으로, 반복적으로 이어지는 띠 모양의 회문양은 길상 행운이 영구함을 상징한다.
황제릉 침전의 합각벽에도 문양이 장식된다. 침전은 황제 혼령이 머무는 유택(幽宅)이다. 그래서 침전 내부에는 화려한 단청으로 꾸미고, 외부에는 여러 가지 장식 문양을 베푸는데, 이것은 침전을 생전에 거처하던 궁실처럼 꾸미려는 의도다. 고종과 순종 능인 홍 유릉의 합각벽 장식은 ‘강(康)’자와 ‘령(寧)’자 문양을 크게 새기고 벽돌로 마감한 형식으로 돼 있다. 생전처럼 사후 세계에서도 강령(康寧)하기를 염원하는 당시 백성들의 마음이 담겨 있다.
불전(佛殿) 합각벽 장식은 ‘만(卍)’자가 대세를 이룬다. 이것은 여래의 가슴과 족적에 나타나는 신비로운 상(相)이자 불심인(佛心印)이다. 이 때문에 ‘卍’은 단순한 장식문양이 아니라 종교적 표상이라 할 수 있다.
민가 합각장식의 경우 단순한 장식 본능으로밖에 생각되지 않는 것이 적지 않다. 하지만 때로 정성을 들인 흔적이 뚜렷하고 수준도 높은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영월 주천면 조견당(照見堂)의 합각 장식이 그 한 예다. 순조 대 건물로 알려진 이 집의 합각 벽면에 해와 달이 장식돼 있다. 동쪽에 해, 서쪽에 달을 배치한 것을 보면 일(日)-양(陽)-동(東), 월(月)-음(陰)-서(西)로 상징되는 역(易)의 원리를 주택에 적용하려 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문자로써 합각벽을 장식한 흥미로운 사례도 있다. 청주 남성리의 민가에서 볼 수 있는데, 합각 면 위아래로 ‘성(星)’과 ‘신(辰)’ 두 글자를, 그 좌우에 ‘천(川)’과 ‘류(流)’자를 새겨 놓았다. 이 글자로써 합각을 장식한 집 주인의 의중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중용』의 한 구절에서 따온 것은 확실하다. 『중용』 30장에, “중니(공자)는 위로는 천시(天時)의 운행을 법 삼고 아래로는 수토(水土)의 이치를 좇았다.”는 구절이 있다. 여기서 ‘천시’는 성신의 운행, ‘수토’는 천류를 의미한다.
살림집뿐만 아니라 정자의 합각에도 장식문양이 베풀어진다. 경상남도 합천에 있는 시도유형문화재 제198호 호연정 합각벽에서 암키와를 이용해서 난초를 표현해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기와 자체의 곡선을 교묘히 이용하여 난초 잎의 유연함을 잘 표현했다. 광주광역시 충효동에 있는 환벽당의 합각벽 장식처럼 암키와와 수키와를 이용하여 반추상 문양을 베푼 예도 있다. 비록 간단한 문양이지만 건물을 아름답고 고상하게 꾸미는 데 충분히 기여하고 있다.
합각에 베풀어진 조형물들과 문양들을 숨은 장식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사실 이들은 있을 만한 곳에 있는 것이다. 그곳에 있으면서 주거공간을 안락하고 상서롭게 유지해 주고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이 정서적 안정을 누리게 해준다. 이 모든 것이 이들 장식들이 가진 미적 요소와 상징성 덕분이다.
글. 허균(한국민예미술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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