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유산사랑
- 제목
- 나를 일으켜 세워준 백제의 미소 국보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 삼존상 산악인 엄홍길
- 작성일
- 2022-03-30
- 작성자
- 국가유산청
- 조회수
- 1395
1,500여 년의 시간을 버틴 암벽 속 삼존불
엄홍길 대장의 삶 속에는 늘 불교가 함께했다. 그가 어렸을 적 부모님은 고향인 경남 고성을 떠나 망월사(望月寺) 아래로 이사했고, 엄홍길 대장은 어린 시절부터 집 근처에 자리한 도봉산을 수없이 오르내리며 산악인을 꿈꾸었다. 국내의 산에 오를 때마다 마주쳤던 사찰과 히말라야를 등반하면서 오갔던 네팔에서도 불교를 접할 수 있었다. 그런 그의 가슴에 남는 문화재는 ‘백제의 미소’로 유명한 국보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이다.
“처음 국보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을 보았을 때 한참을 서서 그 미소를 감상했던 기억이 납니다. 투박하면 서도 은은한 빛깔이 긴 세월을 지나왔다는 것을 알려주었고, 온화한 미소는 너무나도 아름다웠지요. 그 미소를 한 없이 바라보다 보면 어느 순간, 사람처럼 느껴졌어요. 마치 어떤 어려운 일도 헤쳐나갈 수 있을 거라는 용기의 메시지를 주는 것 같았지요.”
‘마애(磨崖)’란 암벽에 조각했다는 의미이다. 국보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은 서산 가야산 용현계곡 입구 왼쪽 층암절벽에 새겨져 있는데 국내 마애불 중 가장 오래 되고 조각미가 뛰어나다. 거대한 여래입상을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보살입상, 왼쪽에는 반가사유상이 조각되어 있는데 백제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됨에도 거의 훼손 되지 않았다. 몸체와 배경 면의 조각선은 뚜렷하고 생동감이 넘친다.
“이 마애삼존불이 더욱 신비로운 이유는 햇빛의 방향과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그 미소가 다르게 보인다는 점이에요. 오전에 햇빛을 가득 머금었을 때의 모습이 가장 아름 답지요. 또 처마 역할을 하는 큰 바위 아래에 새겨져 있는데 조각 면이 살짝 기울어진 덕분에 비바람이 불어도 정면으로 들이치지 않아요. 결과적으로 1,500여 년의 시간을 버티며 우리에게까지 그 미소가 전해질 수 있었습니다.” 엄홍길 대장은 이후 마애삼존불의 사진을 집안에 붙여두고 힘들 때마다 ‘백제의 미소’를 한참 바라봤다고 한다. 히말라야를 오르며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도, 재단을 운영하며 어려운 일과 마주칠 때에도 백제의 미소는 그에게 늘 힘을 주었다.
국보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은 국내 마애불 중 가장 오래되고 조각미가 뛰어나다. 거대한 여래입상을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보살입상, 왼쪽에는 반가사유상이 조각되어 있는데 백제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됨에도 거의 훼손되지 않았다.
타인을 위한 두 번째 도전
엄홍길 대장은 2008년 엄홍길휴먼재단을 설립하고 두 번째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히말라야에서 죽음의 고비를 맞닥뜨릴 때마다 신 앞에서 맹세한 “살아서 내려가게만 해 주시면 그 은혜를 잊지 않고 남을 위해 봉사하겠다”라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엄홍길휴먼재단은 네팔 오지에 학교를 설립하고, 의료·복지시설을 지원하며, 사고를 당한 셰르파와 후배 산악인 유족들을 돕고 있다.
그중에 서도 가장 힘을 쏟는 일은 학교를 짓는 일이다. 히말라야 8,000m 16좌라는 의미로 16개의 학교를 짓기로 한 그는 2009년 팡보체 마을에 제1호 휴먼스쿨을 설립했다. 1986년 에베레스트 등반 당시 추락사고로 사망한 동료 셰르파 술딘 도루지의 고향이었다. 이후 타르푸, 룸비니, 비렌탄티, 다딩 등 네팔 오지 곳곳을 찾아다니며 학교를 세웠다.
“히말라야에 오르기 위해 수도 없이 네팔을 오갔어요. 산을 등정하겠다는 목표가 있었을 때는 오로지 산밖에 보이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가난의 고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아이들이 희망찬 미래를 꿈꾸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휴먼스쿨에서 꿈을 꾸고 성장하는 아이들을 볼 때면 히말라야를 오를 때보다 더 큰 기쁨을 느낍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곳에 학교를 만드는 일은 쉽지 않았다. 모두가 불가능할 거라 만류했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좋은 뜻에 함께하는 사람들이 생기면서 11년 만에 목표했던 16개 학교를 모두 설립할 수 있었다. 현재 네팔에는 16개 휴먼스쿨이 운영되고 있으며, 지난해 12월 네팔 테라 툼 아뜨라이 지역에 19번째 학교건립협약이 이뤄졌다.
“학교를 지으면서 제가 깨달은 진리가 있어요. ‘좋은 생각을 가지고 좋은 일을 하려고 하면 그 일은 분명히 이뤄진다’, 그리고 반드시 그만큼의 기쁨과 행복으로, 또 다른 좋은 일로 나에게 되돌아오더라는 거예요. 앞으로도 이 믿음을 잊지 않고 살아가려고 합니다.”
최근 코로나19 이후 오랜만에 네팔에 다녀왔다는 그는 학생들의 모습에서 자신도 큰 힘을 얻고 있다며 웃음 지었다. 산 아래에서 이뤄지고 있는 그의 두 번째 도전은 세상을 보다 밝고 아름답게 만들어 주고 있다.
글. 권유진 사진. 주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