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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 지정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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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고려인삼의 문화재 등록 노력에 대한 감사와 건의
작성자
김시관
작성일
2020-10-27
조회수
176

안녕하십니까? 저는 건국대학교 의료생명대학 김시관교수입니다(2013. 1.~2014. 12. 20대 고려인삼학회장 역임). 우선 고려인삼을 문화재로 등재하고자 노력하고 계신 문화재청 관계자 분들과 심의위원분들의 노고에 깊은 감사를 표합니다. 저는 지난 40년간 고려인삼의 효능 연구에 매진해 온 학자로서 1980년 중반부터 끊임없이 고려인삼을 국제상표등록 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늦기는 하였으나 지금이라도 그 중요성에 대해 제대로 인식했다는 사실은 참으로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중국, 일본과 함께 한자문화권에 속하는 민족으로 처음부터 Panax ginseng이라는 식물을 인삼으로 불렀던 것은 아닙니다. Panax ginseng이라는 식물은 중국 역사서나 의서에 보면 “參”으로 기재되어 있으나 언제부터인가 한반도에서 생산된 삼을 “人蔘”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그것도 “高麗人蔘”이라 불렀습니다. 왜 동일한 식물을 삼과 인삼이라 구분하여 불렀겠는가? 그 이유는 인삼은 인체의 모양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야생삼은 사람 모양을 하고 있지 않았는데 그러면 어떤 이유로 사람 모양을 닮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인공재배 그것도 이식재배법으로 생산했기 때문이며 더 나아가 “6년간 재배”했기 때문입니다. 인삼이 인체 모양으로 되려면 1년생 묘삼을 “45도” 각도로 본포에 옮겨 심어야 5년부터 지근이 발달하여 6년이 되면 사람 모양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중국은 이식재배를 하지 않는 직파법으로 재배했기 때문에 사람 체형을 하고 있지 않아 삼이라 부르게 된 것입니다. 또 다른 이유로는 한반도의 기후가 인삼으로 성장시켰다고 생각합니다. 한반도는 년간 인삼의 생육일수가 180일에 이르나 중국은 120밖에 되질 않습니다. 따라서 1년생 묘삼의 키가 작아 이식재배를 해도 사람 모양이 잘 나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중국의 인삼재배 단지는 한반도보다 훨씬 북쪽에 위치하여 인삼이 추운 겨울을 견디기 위해 땅속 깊이 들어가는 경향이 있어 가늘고 길게 자라게 됩니다. 옛날 시골 농부들은 무를 수확하면서 그해 겨울의 추위를 가늠했다고 합니다. 즉, 무가 깊게 뿌리를 내리면 그해 겨울은 추울 것이라 예상한 것이지요. 지브랄타 해협은 한반도와 위도가 비슷함에도 불구하고 4계절이 뚜렷하지 않아 인삼재배에 부적절합니다. 결론적으로 “고려인삼”은 조상들의 지혜와 독특한 한반도의 기후가 함께 만들어 낸 걸작품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면 왜 인삼이란 단어 앞에 “고려”라는 접미어를 붙였을까요? 이는 고려시대부터 인공재배를 시작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고려도경(송나라 서긍, 1123, 고려인종)에 의하면 자숙을 하였다와 자색을 띤 인삼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는 증삼을 하였다는 이야기인데 야생삼은 지금도 마찬가지로 절대 쪄서 말리지 않습니다. 즉, 재배삼을 장기 보존하기 위해 쪄서 말리는 과정을 거쳤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문화재청에서 인삼을 무형문화재로 등록한다면 당연히 “인공재배의 시발점”을 내포한 “고려인삼”이라는 어휘를 사용할 것을 강력히 건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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