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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기고

제목
문화재의 뒤안길(54)-강강술래(서울경제, '20.8.31)
작성자
한나래
게재일
2020-08-31
주관부서
대변인실
조회수
654


문화재의 뒤안길(54) (서울경제, '20.8.31)


강강술래

한 동네 놀이서 민족의 '전통'으로

    


글/ 한나래 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 학예연구관 


국가무형문화재 제8호 강강술래 중 ‘남생아 놀아라’의 모습

 

국가무형문화재 제8호 강강술래 중 ‘남생아 놀아라’의 모습. /사진제공=문화재청

 

[서울경제] 둥근 원을 그리며 돌고 돈다. 돌다가 흥이 나면 원 안으로 몇 사람이 들어가 ‘남생아 놀아라’ 외치며 춤을 추고 ‘고사리꺾기’ ‘청어엮기’ ‘지와밟기’ 등의 놀이도 즐긴다. 국가무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된 강강술래다.

 

강강술래의 기원으로 여러 설이 있지만 많이 알려진 것은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병사 수가 많은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마을 부녀자에게 산봉우리를 돌며 손 맞잡고 노래를 부르며 춤추게 했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그보다 앞선 ‘삼국지’ 중 ‘동이전’의 마한조에는 “5월에 씨를 다 뿌리고 귀신을 제(祭)하는데, (중략) 수십 명이 함께 춤을 추고 함께 일어나 서로 따르며 가락에 맞춰 손발을 맞추며 몸을 낮췄다 높였다 하면서 땅을 밟는다”라는 강강술래를 떠올릴 수 있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를 토대로 강강술래가 수확을 기뻐하는 농민원무(農民圓舞)에서 유래했다는 ‘제의설’과 놀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는 ‘유희설’을 절충적으로 보는 견해도 존재한다.

 

어떤 기원이든 강강술래의 역사에는 공통적으로 흥겨운 ‘놀이’가 존재한다.

정월 보름, 팔월 추석의 가장 달 밝은 밤에 축제를 벌여 노래하고 춤추던 풍습인 강강술래는 서남해 지역을 중심으로 주로 해안 지역에서 연행되다 점차 전국으로 확대됐다.

어쩌면 한 동네의 놀이였을 강강술래는 시간이 흘러 민족의 ‘전통’이 됐고, 그 전통은 오늘날 무형문화재로 인정받고 있다.

 

이처럼 강강술래의 기원과 전승 과정을 보면 ‘전통’의 형성과 ‘문화재’의 시작은 삶 속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월대보름을 전후해 즐기던 민속놀이인 ‘북청사자놀음’이나 장례놀이인 ‘진도다시래기’ 등 특히 무형문화재에는 삶의 흔적들이 더 강하게 나타난다.

‘문화재’는 삶 속에서 시작되기에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존재하고 현재의 삶 역시 시간이 흐르면 언젠가는 ‘전통’과 ‘문화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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