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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기고

제목
문화재의 뒤안길 ㉞ - 국새 1호(서울경제, '20.3.30)
작성자
황정연
게재일
2020-03-30
주관부서
대변인실
조회수
1277

문화재의 뒤안길 ㉞ (서울경제, '20.3.30)

 

대한민국 국새1호
   
서예가 김태석 제작...분실로 행방은 묘연


글 /황정연 문화재청 유형문화재과 학예연구사

 

대한민국 국새 1호에 새겨진 김태석의 글씨.jpg

대한민국 국새 1호에 새겨진 서예가 김태석의 글씨. /사진제공=문화재청

 


[서울경제] 최근 고려시대 국새가 찍힌 ‘최광지 홍패’가 보물로 지정 예고되고 대한제국 국새가 미국에서 환수되면서 우리나라 역대 국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과거 왕조에서 사용한 인장은 새(璽), 보(寶), 보인(寶印), 어새(御璽), 국새(國璽)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으며 이 중 국새는 나라를 대표하는 명실상부한 인장으로 오늘날까지도 공식적으로 사용되는 용어다.

 

국새는 옛 임금들만 사용했던 것이 아니다.

나라가 있는 한 국정운영을 위한 인장은 반드시 필요하므로 지금의 대한민국 정부도 국새를 사용하고 있다. 1948년은 광복 후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최초의 국새가 탄생한 해이다.

 

이때 국새의 도장글(印文)을 쓴 인물은 서예가인 성재 김태석(1874~1951년)이다.

김돈희·오세창과 더불어 근현대 서예계를 주름잡았던 그는 고종과 순종의 인장은 물론 대만 초대 총통 위안스카이에게 옥새를 새겨줄 정도로 널리 실력을 인정받았지만 오늘날 그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임시정부 수립 30주년이 되는 해에 국새 제작이라는 역사적인 순간을 마주한 그가 쓴 문구는 ‘대한민국지새(大韓民國之璽)’였다. 하지만 그의 글씨가 담긴 대한민국 국새 1호의 실물을 지금은 확인할 길이 없다.

국새를 비롯해 초대 행정부의 관인(官印)이 1960년대 즈음 분실된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생전에 국가의 인장 업무를 도맡았던 김태석은 관련 기록도 많이 남겼다.

그가 형태조차 불명확한 대한민국 국새 1호의 실체를 밝혀줄 열쇠가 될지 모른다는 기대를 하게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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