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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사랑

제목
우리나라의 천연기념물 이팝나무
작성일
2014-04-01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16001

순천 평중리 이팝나무(천연기념물 제36호) ⓒ문화재청

우리나라의 천연기념물 - 이팝나무

 

슬픔과 아픔으로 태어난 이팝나무

슬픔과 아픔은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에너지이다. 그래서 나무의 탄생설화에는 대부분 슬픈 사연을 담고 있다. 슬픔과 아픔 없이는 아름다운 것을 만들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고통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다. 그래서 모든 생명체의 삶은 언제나 고통으로 채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삶의 모습은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나무의 아름다운 모습은 고통을 피하지 않고 온전히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이팝나무의 탄생설화도 무척 슬프다. 이팝나무의 슬픈 사연은 이름에 숨어 있다. 이팝은 크게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하나는 ‘이밥’이고, 다른 하나는 ‘입하(立夏)’이다. 전자는 꽃의 상징을, 후자는 개화기를 뜻한다. 이밥은 이팝나무의 꽃을 이성계가 세운 조선왕조의 왕족이나 지배자들만이 주로 먹었던 쌀밥에 비유한 것이고, 입하는 24절기 중 하나에 비유한 것이다. 이팝나무의 탄생설화는 다음과 같이 ‘이밥’에서 탄생했다.

옛날 경상도 어느 마을에 열여덟 살에 시집 온 착한 며느리가 살고 있었다. 
그녀는 시부모님께 순종하며 쉴 틈 없이 집안일을 하며 살았지만 시어머니는 늘 트집을 잡고 구박하며 시집살이를 시켰다. 
그러나 동네 사람들은 이 집 며느리를 동정하고 칭송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의 큰 제사 때 며느리는 조상들께 드리는 쌀밥을 지었다. 
항상 잡곡밥만 짓다가 쌀밥을 지으려니 혹 밥을 잘못 지어 시어머니께 꾸중 듣는 것이 두려워 며느리는 밥에 뜸이 잘 들었나 보기 위해 밥 알 몇 개를 먹어보았다. 
그런데 그 때 마침 시어머니가 부엌에 들어갔다가 그 광경을 보고 제사에 쓸 밥을 며느리가 먼저 퍼먹었다며 온갖 학대를 했다.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구박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뒷산에 올라가 목을 매어 죽었다. 이듬해 며느리가 묻힌 무덤가에서 나무가 자라더니 흰 꽃을 나무 가득 피워 냈다. 
동네 사람들은 이밥에 한이 맺힌 며느리가 죽어서 생긴 나무라 생각했으며, 이 나무를 이팝나무라 불렀다.

 

물푸레나뭇과 갈잎 큰 키 이팝나무의 탄생설화에는 서민의 가난한 삶이 배어있다. 이팝나무에 꽃이 피는 입하는 시기적으로 서민들의 삶이 가장 힘든 ‘보릿고개’였다. 그러나 이팝나무의 탄생설화에는 며느리의 슬픈 죽음만 배어 있는 것이 아니라 시어머니의 원망을 뛰어넘은 ‘씻김’도 숨어 있다. 꽃이 바로 죽음의 승화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이팝나무를 사랑하는 것도 단순히 며느리의 슬픈 죽음에 대한 동정심 때문만이 아니라 죽음을 뛰어 넘은 씻김의 승화 때문이다. 이팝나무의 학명(Chionanthus retusa Lindley et Paxton)을 붙인 영국의 식물학자 린들리(Lindley, 1799-1865)와 팩스턴(Paxton, 1801~1865)도 꽃을 강조했다.

학명 중 ‘키오난투스(Chionanthus)’는 ‘흰 눈’을 의미하는 ‘키온(chion)’과 ‘꽃’을 의미하는 ‘안토스(anthos)’의 합성어다. 영어권에서는 이팝나무를 ‘프린지 트리(Fringe tree)', 즉 ‘하얀 술이 달린 나무’라 부른다.

이팝나무의 한자 이름은 ‘류소수(流蘇樹)’와 ‘육도수(六道樹)’이다. 류소수는 이팝나무의 꽃을, 육도수는 이 나무의 용도를 강조한 이름이다. 일본에서는 이팝나무를 ‘차엽수(茶葉樹)’라 부른다. 이팝나무의 잎으로 차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팝나무는 껍질이 벗겨지는 어린 모습과 껍질이 벗겨지지 않는 성장 뒤의 모습이 상당히 다르다. 열매는 형제인 왕쥐똥나무처럼 둥근 콩알을 닮았다.

 

천연기념물 이팝나무의 가치

우리나라에는 순천 평중리 이팝나무(천연기념물 제36호), 고창 중산리 이팝나무(천연기념물 제183호), 광양읍수와 이팝나무(천연기념물 제235호), 진안 평지리 이팝나무군(천연기념물 제214호), 양산 신전리 이팝나무(천연기념물 제234호), 김해 신천리 이팝나무(천연기념물 제185호), 김해 천곡리 이팝나무(천연기념물 제307호) 등지에 천연기념물 이팝나무가 살고 있다.

김해 신천리 이팝나무(천연기념물 제185호) ⓒ문화재청

천연기념물 이팝나무가 살고 있는 곳은 전라남북도와 경상남도 지역이다. 이처럼 천연기념물 이팝나무가 모두 남쪽 지역에 살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 지역의 이팝나무는 농사의 지표였다. 이곳 사람들은 이팝나무의 꽃을 통해 농사의 흉풍을 점쳤다. 꽃이 많이 피면 풍년, 적게 피면 흉년이라 생각했다. 이 같은 풍속은 물이 많은 곳에서 이팝나무가 잘 자라기 때문이다.

천연기념물 이팝나무는 250살에서 600살까지 지역마다 나이가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그 지역민들의 수호신(守護神)이라는 사실이다. 이팝나무에 대한 믿음은 기본적으로 농업사회의 산물이지만, 그 가치는 지금도 여전히 높다. 천연기념물 이팝나무는 무엇보다도 생태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현재 천연기념물 이팝나무는 아주 긴 세월 동안 인간과 함께 살면서 몸속에 수 백 년 간 자신의 삶은 물론 마을의 역사까지 고스란히 품고 있다. 그래서 천연기념물 이팝나무는 자연생태로서의 가치만이 아니라 인문생태 및 사회생태까지 읽을 수 있는 귀중한 사료(史料)이다.

 

글 강판권(계명대학교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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