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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울진 소광리 금강송 군락지’ 명품에서 명승되다
작성일
2010-05-12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6060




문화재 복원 소나무 ‘금강송’ 우수성

소광리 소나무 숲은 우리나라의 금강소나무 군락지 중에서 대표적인 곳이다. 소나무 산림의 생태적인 가치와 소나무 군락 경관이 수려하고, 조선시대 소나무 보호를 위하여 설치한 ‘황장봉계표석’이 문화재자료 제300호로 지정되어 있는 등 문화적 가치와 역사성을 가지고 있어 명승 대상지로서 적합한 곳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울진 소광리가 명승으로 지정된다는 반가운 소식을 듣고는 문득, 몇 년 전 문화재청장과 산림청장이 문화재 보수·복원용 목재 생산을 위해 울진 소광리에서 작은 소나무 묘목을 심었던 일을 떠올렸다. 이 지역의 우수한 소나무들이 잘 보전 관리되어 장차 문화재 복원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면서 150년 후, 문화재 복원용목재로 사용하자는 업무협약이 주된 내용이었다.



우리나라 소나무는 자라는 지역과 형태에 따라 여러 가지로 불리고 있다. 그 중 금강소나무에 대해 알아보면 주로 태백산맥을 따라 분포하는 소나무를 금강소나무라 부른다. 나무가 일직선으로 곧게 뻗어 자라는데 강원도 지역에서 주로 자란다고 강송江松이라고도 하고, 속이 누르스름한 빛을 띤다고 해서 황장목黃腸木이라고도 한다. 금강소나무의 특징은 목재의 결이 아름답고 단단하며 재목으로 쓰기 위해 송판으로 켠 뒤에도 크게 굽거나 갈라지지 않고 송진이 많아 잘 썩지도 않기 때문에 예로부터 소나무 중 단연 으뜸으로 쳤다. 따라서 궁궐이나 큰 사찰 등 권위 있는 건물을 지을 때 소나무 중에서도 최상급 목재인 금강소나무를 주로 사용하고 있다. 일부 격이 떨어지는 사찰이나 한옥에서 느티나무, 잣나무, 참나무 등을 사용하기도 했으나 격이 높은 건물엔 대부분 금강 소나무를 사용하였다.

 

‘황장봉계표석’과 봉산封山제도의 유래

조선시대 초기에는 국가에서 필요한 소나무 목재를 조달하기 위한 지역을 금산禁山으로 지정하여 관리했다. 전란으로 인한 복구용 목재 생산을 위한 대량 벌채가 목적이었다. 후기로 내려 올 수록 권세가들이 산림을 사유화하면서 소나무를 보호하기가 곤란해졌다. 이러한 문란한 임정을 쇄신하고 관리의 부정을 막고자 숙종 때 금산제도 대신에 봉산封山제도를 도입하였다. 봉산제도란 국가에서 필요한 특정한 용도의 목재(조선재, 관곽재, 신주용 목재)를 공급하기 위한 지역을 설정하는 제도이다. 조선시대 많이 지정했던 봉산은 선재봉산船材封山, 황장봉산黃腸封山, 율목봉산栗木封山이 있는데 선재봉산은 전선戰船과 조운선漕運船을 만드는데 필요한 소나무와 참나무를 생산하는 곳이고, 황장봉산은 왕실에서 필요한 관을 만들거나 궁궐 건축에 필요한 소나무를 생산하는 곳이다. 율목봉산은 신주神主를 만드는데 필요한 밤나무를 생산하려고 지정한 산림이다. 조선 순조8년(1808) 편찬된 『만기요람(왕에게 경제, 군제, 토지 등에 대해 보고하기 위해 편찬)』에 따르면 전국에 봉산은 282개소가 지정되어 있었으며 그중 황장봉산은 60개소로 나타나고 있다. 이렇게 지정된 봉산에는 봉표를 자연석 등에 새겨 나라에서 지정한 산림임을 쉽게 알게 하였고 일반인이 함부로 나무를 베지 못하게 하였다.

울진 소광리는 백성들이 함부로 나무를 베지 못하도록 산지를 황장봉산으로 지정하여 특별관리 하였던 지역으로 이곳에는 아직도 바위에 새긴 황장봉표가 남아있다. ‘울진소광리황장봉계표석’이라 불리는 바위는 조선왕실에서 금강소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일반인의 벌목을 금한다’는 표시를 해놓은 것이다. 소광리 표석은 숙종 6년(1680년)에 새겨진 것으로, 그 구역의 경계를 이루는 마을 이름들과 길吉이라는 사람을 산지기로 명한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조선시대의 이러한 보호로 울진 봉화 지역의 소나무는 그나마 잘 보전되어 왔다. 그러나 일제시대 철도가 부설되고 신작로가 개설되는 등 교통이 발달되자 봉화 울진 지역에 있는 소나무 들이 피해를 보기 시작하였다. 특히 엄청나게 많은 양의 소나무가 봉화군 춘양역을 통해 외지로 반출되었는데, 당시 지역에서 생산된 금강소나무 목재를 춘양목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그러나 다행히 소광리 일대는 불편한 교통으로 인하여 금강소나무가 잘 보전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금강송 업무협약 내용 및
문화재 지정 보호의 중요성

우리나라의 건축문화재는 주재료가 목재로써 문화재의 보수 및 복원에는 다량의 목재가 소요되고 있다. 특히 문화재청에서 1990년 대 부터 시작한 경복궁 복원을 비롯해 일제에 의해 훼손된 조선시대 궁궐 등을 복원하는 데는 엄청난 양의 목재가 필요하였으며, 앞으로도 문화재 보수용 목재가 필요한 실정이다. 이에 국가적인 차원에서 조직적인 소나무의 재배 관리가 필요하게 되었고, 문화재청과 산림청이 업무협약을 통해 문화재 보수 복원용 목재림을 지정, 관리하기로 한 것이다. 더불어 이를 명문화하고 후손들에게 길이 남기고자 타임캡슐을 묻기로 계획을 수립했다. 금강소나무를 보존하기 위한 ‘황장봉표’가 설치되어 있는 울진 소광리에서 이 행사를 하기로 하였다.

2005년 11월 11일 타임캡슐을 묻는 행사를 하고 기념식수로 소나무 2,000여 그루를 심었다. 타임캡슐 안에는 문화재청과 산림청간의 업무협약서 1부, 문화재청·산림청 직제표 각1부, 문화재보수 관련자료·문화재청 업무관련자료·한식목공기능자 명단 등 문화재청 자료 17점과, 황장봉계 표석 1점, 천연보호림 지정·고시 전문·소나무 재선충방제 특별법령 편람·조선후기의 송정松政의 체계와 변화·금강소나무 조각 등 산림청 관련 자료 39점을 넣어 정성스럽게 매립하였다. 이 타임캡슐은 150년 후에 우리 후손들이 꺼내보도록 한 것이다. 당시 【금강송 보호림 업무협약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산림청과 문화재청은 후손들이 전통목조건축을 수리하고 복원하는데 사용할 금강송 보호림을 조성하는데 합의하고 국무총리 입회하에 경북 울진군 서면 소광리 일대 150만평의 금강송 솔밭은 향후 150년간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함부로 벌채할 수 없도록 업무협약을 맺으며 이에 관한 일체 자료를 여기 타임캡슐에 담아 후손들에게 알리고자 한다.』



이날 심은 2,000여 그루의 소나무는 대략 80년 이상이 되면 궁궐의 서까래용으로 사용이 가능할 만큼 성장하고, 150년 정도 되면 기둥으로 사용이 가능할 정도로 클 것이다. 이날 심은 소나무들이 150년 동안 무탈 없이 잘 자란다면 우리 후손들은 이곳의 나무를 사용하면서 선배들의 깊은 뜻을 이해하리라 생각한다. 이러한 역사성이 있는 울진군 서면 소광리가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된다고 하니 감회가 새롭다. 우리들은 이 지역의 소나무를 잘 가꾸어 나갈 것이다. 질 좋고 우수한 소나무들이 살아서는 명승의 경관을 유지하고, 죽어서는 문화재 보수·복원용 목재로 사용되어 문화재로서 수백 년을 이어갈 것을 기대해 본다.  


글·사진 | 조운연 문화재청 천연기념물과   
사진제공 | 연합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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