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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기고

제목
조선시대 멋쟁이의 초가을 옷감
작성자
안보연
게재일
2017-10-19
주관부서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보존과학센터
조회수
5493

‘여러 신하들의 옷을 7월까지는 마직(麻織)으로 입게 하고, 8월 이후로는 교직(交織)으로도 입게 하였다.’1416년 7월, 『태종실록』의 기록이다. 요즘처럼 선선한 초가을 날씨에 조선의 벼슬아치들은 교직단령을 입었다고 한다.

 

교직물(交織物)은 서로 다른 성분의 실을 섞어서 제직한 것으로, 날실(경사)과 씨실(위사)에 각각 다른 종류의 실을 사용하거나 날실 혹은 씨실 안에서 서로 다른 종류의 실을 번갈아 가며 제직할 수도 있다. ‘면혼방’, ‘캐시미어혼방’이 없던 그 옛날에는 이처럼 날실과 씨실에 서로 다른 실을 섞어 짰다.

 

교직물에 대한 우리나라 최초의 기록은 『삼국사기』의 ‘탑등(氍㲪)’으로, 날실에는 마사(麻絲)를, 씨실에는 모사(毛絲)를 사용했다. 교직물의 전통은 고려와 조선시대까지 이어져왔는데, 현재 남아있는 대표적인 유물로 고려 말 문수사 금동아미타여래좌상에서 나온 ‘사저교직 답호(보물 제1572호)’등 조선시대의 복식유물이 있다.

 

서유구의 『임원경제지』에는 교직의 종류가 상세하게 구분되어 있다. 날실에 견사(絹絲), 씨실에 면사(綿絲)로 짠 것을 ‘교직’, 날실에 견사, 씨실에 면사 2올과 견사 2올을 번갈아 짠 것은 아롱아롱한 무늬가 있어 ‘반주(斑紬)’, 날실에 면사, 씨실에 모시실을 번갈아 짜면 ‘춘포(春布)’라 하였다. 『규합총서』에는 면(무명)으로 날실을 하고 저사(모시)로만 씨실을 하여 짜면‘섞이’가 되니 봄, 가을에 입기가 좋다고 전한다. 국가무형문화재 제28호 나주샛골나이 고(故)노진남 보유자에 따르면, 명주를 짜다가 씨실이 모자라면 씨실에 무명실을 넣어 짜기도 했으며, 명주실에 모시실을 섞어서 짠 것은 아주 고급이었고, 명주실에 무명실을 섞어 짠 것은 그 보다는 덜 고급으로 여겼다 한다. 사면교직에 대한 유물조사를 하다보면 견사가 부족하여 면사를 사용한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대전 목달동에서 출토된 송효상(1430-1490년 추정)의 단령, 직령, 답호, 철릭과 조선중기 문신 김흠조(1461-1528)의 단령, 답호, 철릭, 조선후기 문신 김확(1572-1653)의 답호, 철릭은 15~17세기 견사(명주실)와 면사(무명실)로 된 사면교직과 견사와 저사(모시실)로 된 사저교직의 복식유물들이다. 관복인 단령이나 남성의 대표 겉옷을 사면교직 또는 사저교직의 홑옷으로 만든 것인데, 한 종류의 실만 사용했을 때보다 더욱 잔잔한 광택이 드러난다. 특히 면작기술이 보급되기 이전인 조선 중기까지는 견사나 저사만큼이나 면사가 귀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사면교직과 사저교직으로 지어진 옷은 멋스러움 그 자체였다고 볼 수 있다.

 

아롱아롱 봄빛, 가을빛을 품고 있는 교직물. 선선한 바람에도 포근함까지 갖추고 있어 간절기 옷으로는 그야말로 제격이다. 송효상, 김흠조, 김확과 같은 조선 벼슬아치들의 초가을을 위한 멋쟁이 아이템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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